2009년 3월 31일

2. 비자 인터뷰 준비 하기

우선, 회사를 통해 미국 행을 준비 하는 것은 무척이나 쉬운 일이 었다.
인사과에서는, 여권을 준비해 주었고,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과 시선을 받았다.

시간을 흘러서, 미국 대사관 인터뷰 일자가 잡히게 되었는데. 직장 인터뷰 이후, 처음 가져보는 인터뷰라 무척 떨리고 긴장 되었다.

광화문역 이었던가? 서울 알짜배기 땅에 자리 잡고 있는 미국 대사관은, 그 생김새 만으로도 사람을 주눅들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대한, 편견을 줄까봐, 잘 입지 않는 회색 양복에, 머리 까지 곱게 빚고, 곱게 줄을 섰다. 지금은 줄을 서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때만 하더라도, 나래비로 줄을 서서, 1 시간 이고, 2 시간 이고 기다리는게 일이었다.
무튼, 나래비로 줄을 서서, 기다리다 보니, 수상쩍은 사람들도 많이 왔다 갔다 했는데, 어떤 아주머니는, 다가와서 서류를 점검 해준다고, 돈을 달라는 사람도 있었고,
택배 회사 사람들도 와서, 택배 서류도 나눠주곤 했었다.
한 2 시간 기다렸더니, 드디어, 문에 들어 가게 되었는데, 안에서도 또 기다림이 기다리고 있었고, 고속 버스 대합실 처럼, 번호표를 뽑고 또 기다리림이 있었고,
드디어, 나의 차례가 되었다. 나의 바로 앞에 분은, 미국에서 세탁소를 할 요량이었나 보다. 영사는 영어로 물어 보고 있었고, 온 가족을 대려온 모양이다. 뭐라 뭐라 물어 보고 있는데, 그 아저씨는, 크게 당황 하고 있었는데 결국은 서류를 다시 준비 해오라는 이야기를 듣고, 쓸쓸히 온가족을 대리고 가게 되었다.
무슨, 남의 나라를 방문 하기 위해서, 인터뷰 까지 하는지, 이게 뭐하는 짓인지, 에이 그놈의 돈 때문에 하는게 아닌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드디어 나의 차례가 왔는데, 이쁘장한 여자 영사가 아닌가!
핼로, 했더니, 안녕하세요 한다. 어라 ...
벽안의 여자와 한국어라 .... 난 미국 가려 하고, 뭔가 묘한 불 화음 ...
뭐때문에 가세요? 언제 가세요? 몇가지 의미 없어 보이는 질문, 어라, 잘 다녀 오세요 란다.
이거 때문에, 3 시간을 기다린걸까 ... 이렇게 인터뷰가 끝났다.

2009년 3월 30일

1. 미국에 1 년만 출장 갈래?

미국에 1 년만 출장 갈래? 2001 년, 나의 미국에 대한 환상을 이렇게 시작 되었고, 이렇게 미국에서 계속 살게 될지는 그 누구도, 나 또한 몰랐다. 아니 알수 없었다. 그만큼 담담 하게 살고 있었고, 한국에서의 삶이 세상의 전부 인줄만 알았기 때문이다. 생일을 몇일 앞둔 날이었다.

오후였나, 아니 늦은 저녁이었나? 부장이 나를 조용히 부르고 있었다. 정보통신 쪽을 담당 하는 계열사라, 많지 않은 회사 식구들이라서 그런지, 막내인 나만 빼고는 모두 알고 있는 뉴스 였다.

왠일인지, 부장은 월급 쟁이로써는 비싸디 비싼, 소금 구이 집을 가자고 했고, 20 여년 차이 나는 막내와, 거의 아버지 뻘인 부장과 술잔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 부장의 성격상, 직선적인 말은 아끼고 또 아끼고 있었고, 결론은 하나 였다.

"미국에 1 년만 갔다 와라". 1 년 경력 3 년으로 쳐줄께, 월급도 지금 보다. 2 배 줄께. 달콤 한 유혹이다. 월급 89 만원 짜리가 미국에 가서 단번에 180 원 짜리가 되는 순간인것이다.

담담히, 집에서 부모님과 상의를 했고, 1 년간 다녀 오는 것으로 결심을 했다. 

회사에서 모든 서류를 일사 천리로 진행을 했고, 남겨진 업무와 남은 업무들에 대한 정리를 시작 했다. 누가 나의 일을 맞아서 할까? 내가 과연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일까? 영어는 한마디도 못하는데... 그 흔하디 흔한 미국에 친척도 나는 없었고, 불행중 다행으로 몇마디 인사말 하는 영어가 전부 였다.

이렇게 출발 보름을 앞두고, 일어난 일에, 서둘러 여권과, 비자 준비가 시작 되었다.